[중앙일보] 30~40대 여성, 갑작스런 빈혈?
“자궁근종 때문일 수 있어요”

“평소에 생리량이 많지 않으셨나요? 초음파에 자궁근종도 보이네요. 아무래도 빈혈 원인은 근종 때문인 것 같은데요.”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거주하는 송모 씨(38•여)는 최근 체력이 부쩍 떨어진 것을 느꼈지만, 폭염 탓에 지친 것으로 알고 방치했다. 그러던 중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핑 도는’ 듯한 느낌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송 씨는 병원을 찾아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았고, ‘빈혈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큰 병이 아니라는 말에 안심하려던 중, 내과 의사로부터 이런저런 질문을 받은 뒤 “산부인과에 가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들었다. 이후 부인과 검진을 받은 결과, 자궁근종이 월경과다를 일으켜 빈혈에 이른 것이란 진단을 받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여성 빈혈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여성은 매달 생리를 겪는 만큼 남성에 비해 빈혈을 겪을 확률이 높다.
특히 월경량이 과다할 경우 이런 증상이 더 심해지는데, 최근 몇 달 사이에 갑자기 생리량이 늘고 체력이 떨어진다면 자궁질환이 원인일 수 있다. 실제로 내과 등에서 빈혈진단을 받은 가임기 여성이 의사의 추천을 받고 산부인과 등을 찾아 자궁근종•자궁선근증까지 진단받은 사례가 적잖다.
자궁내 근육에 생기는 양성종양인 ‘자궁근종’, 자궁내막조직이 자궁근육층에 파고 들어가 자궁이 비대해지는 ‘자궁선근증’ 등은 공통적으로 월경과다를 일으킨다. 이는 출산을 겪은 30~40대 여성에서 흔했지만, 요즘엔 20~30대 환자도 부쩍 늘고 있다.
김재욱 민트병원 자궁근종통합센터 원장은 “대다수 여성은 빈혈기가 느껴져도 ‘이러다 말겠지’하고 버티기 마련이나, 자궁근종•자궁선근증 등에 의해 월경량이 과다해 나타나는 빈혈은 저절로 낫지 않아 방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자궁근종•자궁선근증으로 고생하는 여성의 월경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체내 삽입형 생리대인 탐폰과 성인용 기저귀까지 동원해도 1~2시간이면 흠뻑 젖을 정도다. 이를 한달에 1주일씩 겪는 것이다. 무조건 검은 하의를 입고, 외출은 피하며, 생리기간에는 배우자와 따로 이불을 쓰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빈혈도 서서히 진행된다. 김재욱 원장은 “자궁근종•자궁선근증으로 인한 빈혈은 서서히 일어나 빈혈이 생긴 줄도 모르는 환자가 대다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빈혈로 인해 혈색소수치가 떨어지면 체내 산소운반 능력이 다른 사람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데, 이때 큰 문제가 당장 나타나지는 않는다. 가령 두통이 심해지거나 어지럽고, 체력이 떨어지는 등 일상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정도의 증상이 나타나 방치하기 쉽다. 그러나 혈색소수치는 분명 떨어지고 있다. 환자만 느끼지 못할 뿐이다. 이는 마치 높은 산에 올라 고산증에 서서히 적응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김 원장은 “자궁근종•자궁선근증은 조기발견되면 치료가 쉬운 편”이라며 “그러나 빈혈이나 자궁근종 등으로 나타나는 빈혈기운을 아픈 것으로 인지하지 못해 방치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안타깝다”고 했다.
해당 질환은 정밀검진 후 상황에 따라 비수술적 치료인 자궁근종 색전술, 자궁근종 MR하이푸 등 획일적인 자궁근종 치료대신 다학제적 진료로 맞춤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최근 환자수요가 높은 자궁근종 하이푸는 고강도집적초음파를 조사해 근종을 괴사시킨다. 바늘조차 쓰이지 않는 무침습 치료로 부담이 적지만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이 관건이다. 하이푸 치료가 어려운 경우 근종으로 가는 혈관을 차단해 종양을 괴사시키는 자궁동맥 색전술을 활용하기도 한다.
김재욱 원장은 “최근 3개월 새 생리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계단을 1층 이상 오르는 등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차고, 어지러운 기분이 들며, 얼굴에 핏기가 없고 점막•귓볼이 하얗게 질려 있다면 자궁질환 검진을 받아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