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은 위암, 대장암, 유방암처럼 흔한 암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드문 암도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암 중 발생빈도가 9번째 암으로 알려져 있고 2016년 통계로 6,650명 의 췌장암 환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인들 중 췌장암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종종 들을 수 있죠. 사실 췌장암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췌장암이라 알려진 것은 췌관선암 (pancreatic ductal cell adenocarcinoma, PDAC)을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스티브잡스의 경우 췌장암의 일종인 췌장의 악성신경내분비종양(malignant neuroendocrine tumor of pancreas)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 췌장암은 가장 무서운 암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치료가 어렵고 치료를 한다해도 예후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췌장은 배 가운데의 깊숙한 곳 (후복강)에 가로로 길쭉하게 위치한 장기입니다. 췌장은 오른쪽부터 두부(head), 체부(body), 미부(tail)로 구분합니다. 두부는 십이지장으로 연결되어 소화효소인 췌장액을 분비하는 부위이고 간에서 생성되는 담즙이 배출되는 담관도 지나갑니다. 또한 췌장 두부에는 여러 혈관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췌장 두부에 암이 발생하면 췌장뿐 아니라 십이지장, 담도 등을 함께 잘라내고 또 각각을 소장에 연결해줘야 하기 때문에 수술이 매우 복잡해지고 그래서 합병증도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췌장암 중 가장 골치아픈게 두부에 발생한 췌장암입니다. 물론 체부와 미부에도 췌장암은 발생할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수술이 간단한 편입니다.
췌장암이 무서운 이유
췌장암이 무서운, 즉 예후가 나쁜 이유는 다음의 몇가지가 있습니다. 1) 췌장암은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어 조기 진단이 어렵습니다. 췌장암이 진행되면 담도를 막아 황달이 나타날 수 있고, 췌도를 막아 췌장염이 발생하거나 주변 신경을 침범하면 심한 복통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경우는 대개 3기 이상으로 진행된 경우이기 때문에 이미 수술을 못하는 상태이거나 수술을 해도 재발이 많습니다. 2) 더구나 췌장암은 여러 영상검사법으로도 조기 진단이 어렵습니다. 초기 췌장암이 영상검사법으로 어려운 이유에 대해 다음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3) 췌장암은 다른 암보다 전신항암치료의 효과가 낮기 때문입니다. 이건 암세포 자체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췌장암에는 혈관발달이 좋지 않아 항암제를 써도 암세포에 도달하는 비율이 낮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표적항암제를 개발하거나 아니면 하이푸 (HIFU) 등의 새로운 의료기술을 이용해 항암제의 전달율을 높이려는 노력이 세계의 수많은 연구자에 의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은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4) 췌장암은 많은 다른 암에서는 유용한 종양표지자 혈액 검사(CA19-9)가 도움이 되긴 하지만 정확도가 그리 높지는 않습니다.
[췌장암의 예후가 나쁜 이유]
1) 초기 증상이 없어 조기 진단이 어려움 2) 여러 영상검사법으로도 진단이 어려움 3) 다른 암보다 전신항암치료 효과가 낮다 4) 종양표지자 혈액검사 정확도가 낮다
췌장암의 조기영상진단이 어려운 이유
우리나라에서 흔한 다른 암들은 조기진단을 위한 여러 방법이 확립되었고 이는 국가암검진 등의 정책을 통해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를들어 위암이나 대장암은 위/대장내시경을 주기적으로 시행해 조기암이 진단되면 심지어 내시경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합니다. 유방암은 유방촬영술 (mammography)와 초음파로 조기진단이 가능합니다. 자궁경부암은 골반 내진을 통한 세포진검사를 통해, 폐암은 저선량 CT를 통해, 간암은 초음파 검사와 종양표지자를 통해 조기 진단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췌장암에서는 이처럼 신통한 방법이 없습니다.
가장 쉽게 시행할 수 있는 초음파는 췌장 전체를 보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췌장은 배속 가장 깊숙히 위치하기 때문에 그 앞에는 위나 소장 혹은 대장이 위치하는데 그 내부에는 공기나 음식물, 대변이 있고 이로 인해 초음파가 투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췌장의 두부나 체부는 초음파로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미부는 안보이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설사 초음파로 췌장이 관찰될지라도 작은 췌장암은 초음파로 뚜렷이 그려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따라서 초음파검사는 췌장암에 대해서는 좋은 검사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복부초음파를 경험이 많은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은 복부 초음파 판독 시 항상 췌장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검사라는 언급을 하곤 합니다.
CT(전산화단층촬영)는 췌장암을 진단하는데 초음파보다는 훨씬 우수하지만 이 역시 단점이 있습니다. 많이 아시다시피 방사선에 대한 노출이 불가피합니다. 복부 CT는 여러 종류의 CT 중 방사선 피폭량이 가장 높습니다. 물론 방사선으로 인한 위해보다 이를 통한 이득이 많기 때문에 많이 시행되는 검사이긴 하지만 건강한 대중에게 암 조기진단을 위해 무턱대고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다른 단점은 조영제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영제를 사용하지 않는 CT에서는 췌장암이 전혀 그려지지 않습니다. 조영제는 대부분 무해하지만 간혹 알러지 반응이나 드물게 심각한 아니필락시스 쇼크를 유발해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췌장암의 진단에 있어 다른 검사법들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MRI(자기공명영상)입니다. 불과 10여년전만 해도 췌장암 진단에 MRI는 조영증강 CT와 능력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MRI 기술의 발전으로 두 검사법간의 진단 능력 차이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MRI는 방사선 피폭이 전혀 없고 조영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췌장암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물론 MRI상 췌장에 종양이 있으면 결국 MRI용 조영제를 써야하지만 MRI 조영제는 CT조영제에 비해 부작용이 훨씬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최근 조영증강 CT를 통해 췌장암이 진단된 경우 병변을 더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 조영증강 MRI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CT와 MRI간 진단능력 차이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현재 췌장암의 조기 진단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영상 검사법은 MRI입니다. MRI는 일반적으로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췌장암 진단을 위해 건강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MRI 검사를 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고, 일부 연구결과에 의하면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져서 다른 암에서 시행되는 국가암검진과 같은 스크리닝 프로그램으로서는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MRI 기술의 발달로 췌장만 검사하는 경우 약 15~20분이면 검사가 완료되고, 그만큼 비용도 떨어졌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실 MRI검사를 시행해도 다른 장기의 암 (예: 간암)처럼 극초기 진단은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MRI가 다른 영상검사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가장 초기에 암을 찾을수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현재 췌장암의 조기 진단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검사법은 MRI"
결언
췌장암은 40세 미만에서는 드물고 알려진 위험인자는 흡연, 당뇨, 비만, 유전자 이상 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중년기 이상에서 이러한 위험인자를 지녔거나 혹시 췌장암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이와 같이 무서운 췌장암이 걱정스러워 비용을 감당하고서라도 검사를 원하신다면 비조영 췌장 MRI가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