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병은 어떻게 진단하나?
버거병은 워낙 특징적인 소견-젊은 환자에서 발이 치고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는 증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사들은 이런 류의 환자를 보면 바로 버거병을 의심합니다. 동상, 동맥색전증, 루프스나경피증(scleroderma) 같은 자가면역병 등에서 비슷한 증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매우 드물지요. 그러나 몇 살 까지를 젊다고 할지 그 경계가 애매하므로 장년층에서 동맥경화 때문에 생긴 비슷한 증상이 버거병으로 오해 받기도 합니다.
버거병을 확실하게 진단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현재까지의 방법 중에는 ‘임상증상으로 가능성이 높은 경우 병이 있는 곳의 동맥을 일부 떼어내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조직검사입니다. 그러나 다리로 가는 동맥을 떼어낸다는 것 자체가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그래서 의사들은 복잡한 확진 과정 없이 치료로 넘어가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실제로 동맥경화 때문에 다리 혈관이 좋지 않은 것인데도 버거병으로 잘못 알고 치료를 대략 포기하고 지내는 환자들도 가끔씩 만나게 됩니다.
처음으로 버거병의 실체에 대해서 발표했었던 Mount Sinai 병원에서 1933년-1963년 사이에 버거병이라고 진단을 내렸던 205명의 환자를 후세에 다시 분석해 보니, 33명만 올바른 진단이었고, 28명에서는 애매하였고, 144명에서는 잘못된 진단이었다고 합니다1. 실제로 Dr. Buerger가 이 병을 발표한 뒤에 상당기간 동안 이 병으로 진단받은 환자들이 많았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그 발생율이 상당히 줄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피면 1947년에는 인구 십만 명 중 버거병을 가진 환자가 104명으로 조사되었으나, 1986년의 조사에서는 인구 십만 명 중 13명으로 거의 8분의 1로 줄었습니다2. 이러한 감소는 진단 방법이 미진하였던 시절에 비하여 의학이 발달하면서 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진단방법들이 좋아져 오진이 줄어든 것이 첫째 원인이고, 흡연자가 전체적으로 줄어든 것이 두 번째 원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버거병의 진단기준은 아직 하나로 통일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만큼 간단하지 않다는 뜻이지요. 또한 여러 가지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해서 결론을 내립니다.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준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주 복잡하게는아래와 같이 각 항목별로 점수를 계산해서 진단하자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너무 복잡해서 잘 사용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의사들이 버거병 진단을 위해서 더 많이 참고하는 “Ollin의 진단기준”을 좀더 요약해서 강조하자면 다음의 세가지 입니다. 첫째 조건은 ‘젊고 담배를 피거나 피었던 환자’라는 점, 둘째 조건은 동맥을 막아버릴 수 있는 다른 병이 아닐 것, 그리고 마지막 셋째 조건은 특징적인 혈관조영검사소견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혈관조영검사란 무엇이며, 또 그 소견은 얼마나 특이하길래 이리도 강조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혈관조영검사란 혈관 안으로 가느다란 관을 넣고 조영제(혈관이 X-레이 검사에서 보이게 하는 약물)을 직접 주입하면서 촬영하는 검사법으로, 혈관의 미세한 가지와 이를 타고 흐르는 피의 흐름을 직접 관찰하기 위해서 시행하는 검사입니다.
X-레이 검사라고 하면 검은 바탕에 뼈가 하얗게 보이는 사진을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혈관조영검사에서는 같은 X-레이를 이용한 검사라도 특수한 영상처리(디지털감산) 하여 뼈는 보이지 않게 하고 조영제가 지나가는 길인 혈관만 보이게 만듭니다. 그러면 혈관은 하얀색 바탕에 나있는 검은색 줄처럼 보입니다.
그림 1. 정상 무릎부위 동맥과(좌측) 버거병 환자의 무릎 부위 동맥모습(우측)
위 사진에서 왼쪽은 거의 정상에 가까운 사람의 무릎부위의 혈관조영검사입니다. 가운데 보이는 검은색 굵은 줄이 허벅지를 지나는 동맥이고 이것이 무릎의 아래부분에서 약 세갈래로 갈라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물론 약간의 동맥경화는 있는 상태이지요. 오른쪽은 버거병환자의 비슷한 부위의 혈관조영검사입니다.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보여야 할 길은 없고 그 주변으로 라면가락 모양의 꼬불꼬불한 혈관이 자라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림 2. 정상종아리부위 동맥과(좌측) 버거병 환자의 종아리부위 동맥모습(우측)
다른 사진을 하나 더 볼까요? 왼쪽은 거의 정상에 가까운 종아리 부위에 혈관조영검사 사진입니다. 오른쪽은 버거병 환자의 종아리 부위 혈관조영검사 사진입니다. 먼저 보았던 무릎부위에서의 혈관 모양과 대동소이합니다. 이렇듯 혈관이 막히는 부위와 정도가 조금씩은 달라도 원래의 혈관길이 막히고 옆으로 꼬불꼬불한 혈관이 자라 있는 모습이 아주 특징적이라는 것입니다. 서양사람들은 이렇게 꼬불꼬불한 혈관모양을 라면가락모양이라고 하지 않고 포도주 딸 때 사용하는 ‘코르크따개 모양’이라고 기술 했습니다.
최근에는 관을 직접 삽입하지 않고 정맥으로 조영제를 주고 촬영하는 간접적인 혈관조영술도 상당히 좋은 영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CT나 MRI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위사진은 CT를 이용하여 혈관을 재구성하여 만든 합성영상입니다. 이를 보면혈관조영검사만큼 세세하기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꽤 좋은 혈관영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MRI로도 이와 비슷한 정도의 영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CT나 MRI검사는 혈관조영검사보다는 훨씬 간단히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만 종아리나 발의 가느다란 혈관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확실히 버거병의 소견이 보이지 않고 애매하면 혈관조영검사를 추가로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초음파검사로는 ‘종아리나 발로 내려가는 동맥이 막혀있다’ 정도로는 파악할 수 있지만 이렇게 시각적으로 훌륭한 영상으로 동맥 전체를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초음파가 나오는 probe를 들고 부분부분을 비추면서 하는 검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혈관상태의 감을 잡는 검사로 주로 사용됩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버거병 진단을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세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가지 중 가장 객관적인 요소는 혈관에 대한 영상을 얻어서 버거병에 특징적인 모양이 있는 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혈관에 대한 영상으로는 초음파 검사를 거의 항상 기본으로 합니다. 여기서 가능성이 높다면 환자의 상황에 따라 CT, MRI, 혈관조영검사를 선택해서 진행하게 됩니다.
[참고자료]
1 Herman, B. E. Buerger's syndrome. Angiology26, 713-716 (1975).
2 Lie, J. The rise and fall and resurgence of thromboangiitis obliterans (Buerger's disease). Pathology International39, 153-158 (1989).
3 Papa, M. Z., Rabi, I. & Adar, R. A point scoring system for the clinical diagnosis of B uerger's disease. Eur J Vasc Endovasc Surg11, 335-339 (1996).
글_ 배재익 민트영상의학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