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병, 당뇨와 당뇨발
글 배재익 민트병원 원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사보
<건강을 가꾸는 사람들> 09+10 기고
당뇨병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질병이다. 친척, 지인 중에 당뇨병 환자가 없다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그만큼 꽤 많은 사람들이 당뇨병에 시달리고 합병증으로 고통 받는다. 대한당뇨병학회의 보고(2007~2010년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시행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의 30세 이상 성인 중 10.1%인 320만 명이 당뇨병을 가지고 있고, 이 중 20%는 당뇨병 전 단계에 있다. 특이한 사실은 건강검진이 이렇게 보편화된 현실에서도 당뇨병 환자의 약 30%는 자신이 당뇨병인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뇨병 환자 30%, 병 걸린 줄 몰라
당뇨병은 점점 증가해 2050년 당뇨병 환자가 지금의 두 배인 6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지금 자기가 건강하다고 여기는 30~40대들도 당뇨를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다. 당뇨병의 90~95%는 너무 잘 먹어 비만한 것이 원인이다.
음식으로 섭취한 영양분 중에서도 가장 기본인 탄수화물은 우리 몸에서 포도당으로 분해된다. 포도당은 일단 혈액에 흡수돼 우리 몸 곳곳으로 운반되고, 에너지로 쓰인다. 혈액은 포도당을 세포로 전달하는 배달부로, 이 과정에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도움을 준다. 그런데 당뇨병 환자는 인슐린의 분비와 이용능력에 장애가 생겨, 포도당이 혈액에만 머물고 세포로 운반되지 않는다. 혈관을 타고 돌기만하다가 중간 과정이 생략된 채 바로 소변으로 배출된다. 마치 자동차의 연료가 엔진에서 연소되지 않고 줄줄 새어버리는 것과 같다. 먹고 돌아서도 배가 고프고, 살이 빠지며, 자꾸 소변이 마려운 것은 당뇨병 환자에게서 가장 빈번한 증상이다.
하지만 당뇨병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병이 오래 지속됐을 경우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합병증이다. 당이 많아 끈적끈적해진 혈액은 잘 흐르지 못하고 정체되면서 노폐물이 축적되고, 혈관과 신경을 망가뜨린다. 주로 신경, 눈, 신장의 미세혈관이 손상된다. 특히 콩팥이 망가지면 이러한 변화들이 더욱 가속화되어 뇌졸중, 심장마비, 신경합병증 등과 같은 만성 합병증이 생긴다.
상처 하나로 다리는 절단하는 ‘당뇨발’
당뇨병 중증 합병증 중에는 발가락에 생긴 작은 상처 하나로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는 ‘당뇨발’이란 것이 있다. 세계 인구를 포함한 통계에 의하면 다리 절단의 약 60~70%는 당뇨발이 원인이다. 당뇨발은 신경병증에서 시작한다. 당뇨병이 진행돼 발의 신경이 점점 망가지면, 무뎌진 신경 때문에 발이나 발가락에 쉽게 상처가 생기고 잘 낫지 않는다. 당뇨병에 의한 혈관 손상과 혈관확장기능 저하 때문에 상처가 치유될 만큼의 혈류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혈액이 정체되면 상처조직은 저산소증에 빠져 점점 약화된다. 또한 면역세포의 수와 활동도 저화돼 있으므로 병균이 번식하기 시작한다. 이때쯤이면 소독을 하고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 약 성분이 상처에 도달하지 못해 점점 악화되기만 한다. 할 수 없이 발가락을 절단해보면 이번에는 절단한 부분이 아물지 않고 곪아간다. 그러다 발등을 절단하고 또다시 진행돼 전체 발을 절단한다. 치료를 위해 시행했던 절단방법이 더 많은 부위를 절단하는 악순환을 낳는 것이다.
십 년 전만해도 상처가 낫지 않는 당뇨발에 대해서는 조금 아까워도 빨리 다리를 절단하는 것이 환자든 의료진에게든 덜 고생스러운 방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는 다리절단 자체가 중요한 질병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때의 일이다. 다리를 절단하게 되면 당장은 상처부위에서 독소가 퍼지는 것을 막고 회복이 됐다고 여길지 몰라도 절단부위가 낫지 않거나, 추가절단이 필요하거나, 반대쪽 다리도 절단하게 되거나 하는 경우도 많다.
당뇨발 치료를 위한 혈관재개통술
당뇨발 치료를 위한 중요한 두 가지는 상처치료와 혈관재개통술이다. 혈관재개통술은 기존의 다리 절단치료와 달리 다리를 보존하면서 병변부위만을 치료하는 시술이다.
동맥에 작은 구멍을 내고 카테터, 유도철사, 풍선관, 스텐트와 같은 미세 의료기구로 혈관을 타고 내려가 막힌 부위를 뚫거나, 석회화로 단단해진 혈관을 파고들어 개통하거나, 혈관에 쌓여 있는 노폐물 자체를 제거함으로써 당뇨발을 치료한다.
전체 시술과정을 혈관조영장치로 모니터링하며 진행하기 때문에 전문의가 맡아 시행한다. 이 시술로 발가락이나 발 상처로의 혈류를 개선시키면 조직의 저산소증이 극복되고, 면역세포가 충분히 공급되면서 상처 회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당뇨발은 이 시술로 치료가 가능하다. 이미 미국과 유럽 선진국에서는 혈관재개통술이 널리 보편화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수년간 이 치료법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면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기존의 다리 절단 치료를 빠르게 대체해 시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당뇨발 혈관재개통술의 성공률은 90%, 다리보존율은 95%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혈관재개통술이 비록 당뇨발 재발의 가능성까지 없애지는 못하지만, 발을 보존하는 치료를 통해 다리 절단으로 인한 악순환의 고리는 끊을 수 있다. 여기에 더 이상 당뇨발이 악화되거나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법까지 병행된다면 그 이상의 치료법은 없을 것이다.
치료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과 관리
사실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당뇨발의 예방법은 곧 당뇨병의 관리법이다. 혈당을 조절해서 혈관을 튼튼히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식이요법과 꾸준한 운동을 병행하며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근본적인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실천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가족의 관심과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주치의를 정해 정기적인 검진을 받으면서 당뇨의 진행상황과 몸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도 필수다.